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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일기

[먹살6] 대한민국에서 장발남자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

[먹고는 살아야하니깐] 6. 대한민국에서 장발남자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


1년 3개월정도 머리를 길렀다. 어렸을 때 류승범의 예수님 머리를 보고 막연히 장발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늙어 주책이 되기 전에, 마침 일자리를 바로 구하지 않는 김에 머리를 길러 보기로 한다.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걸 20대 후반부터 하나씩 해보는 것 같다. 삭발도 그렇고 노란머리로 염색하는 것도 그렇고. 어른들이 말하는 늦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른들은 자식이 10대 20대때 뭔가 해본다고하면 하게 둬야한다. 안그럼 3-40살 먹은 노란머리에 장발인 자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단역알바

단역알바는 막연히 해보고 싶었던 알바 중에 하나다. 예전에 단역알바를 찾아봤는 데 프로필 사진을 제출해야해서 수고스럽고 비용이 지출되니 포기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단기 알바를 찾아보다가 프로필사진이 아닌 핸드폰 셀카로 손쉽게 문자지원 할 수 있는 회사를 발견했다. 이름, 나이, 키&몸무게, 거주지역과 함께 셀카를 문자로 보냈다. 곧이어 답장이 왔고 면접시간을 정해달라고 했다. 면접이라니? 그것도 1시간동안이나? 즉흥 연기라도 시키려나? 나는 일일단역알바 지원한건데? 많은 의문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약속한 날짜가 되어 해당 엔터테인먼트로 갔다. 회사의 첫 인상은 교회 청년부 모임실 같았다. 내부에 교회관련 서적과 문구들이 가득했다. 의자에 앉아 기다렸는데 약 5분정도 지나서야 밖에 내가 있는 것을 확인한 직원이 입회지원서를 들고 다가왔다.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은 “머리 안자르실거죠?” 였다.

엔터테인먼트에 문자로 제출한 사진


“네 기르고 있는 중이라” 내가 대답했다.
“머리 안자르시면 일하실 수 없어요 이쪽 바닥이 많이 보수적이라” 직원이 말했다.
‘분명 긴머리인 최근 사진을 문자로 보냈는 데 아무말없다가 지금 이렇게 얘기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괜히 헛걸음 한 셈이다. 직원은 입회지원서를 전달하며 “지금 적으셔도 되고 나중에 머리자르고 오셔서 적어도 되요” 라고 얘기했다. 온김에 뭐라도 하고 가자는 심리가 발동했는지 나중에 쓰는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은 계약서를 꾸역꾸역 적어내고 왔다. 문신 유무 및 위치, 피어싱 유무, 네일아트 유무 등 외양을 묻는 문항이 많았다.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참 몰개성한 걸 좋아하는구나.

호텔서빙알바

알바어플을 보면 호텔서빙알바의 공고가 꽤 많이 올라온다. 급여가 꽤 괜찮은 편이라 상세요강을 읽어 보았다. 빠지지않고 장발, 염색 머리 금지 또는 머리 단정히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장발머리는 어디 서러워서 일자리 구하겠나. 여성분들은 긴 머리가 대부분이니 머리망을 필수로 지참해야한다. 나도 머리망하고 일할 수 있는데. 미관상 별로일려나. 장발들은 어딜가서 일하든 항상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일한다. 머리가 길어보니  묶지않고 일하면 거슬려서 뭐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장발남

장발남이라고하니 이름이 장발장처럼 조금 부도덕한 뉘앙스다. 머리가 긴게 죄는 아닌데 말이다. 유교가 힘이 쎘던 조선시대에 단발령이 내리기 전까지 머리를 자르는 것은 불효라고해서 부도덕한 행위였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말기 19세기말 단발령 내려졌다. 서양인과 일본인의 건의를 고종이 받아들인 것인데 건강관리에 도움이되고 일하는 데 편리하다는 이유다. 130년 지났음에도 고용인은 여전히 일하기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피고용인의 머리를 자르고 싶어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장발을 비롯해 남들과 다른 외양을 못견뎌하는 건 우리가 단일민족인 영향이 클 것 같다. 한국인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목표와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항상 다수의 편에 서고 싶어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항상 다수일 수 없다. 어느 방면에서는 소수이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소수의 영역을 무참히 짓밟는다.
너 취향이 메이저니 마이너니? 라고 물으면 나는 마이너에 가깝다. 소수인 취향이 많다. 생각이 마이너하니 사업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다. 최근에 소수의 시장 매니아층을 겨냥한 시장도 늘어나고 있다. 전전 여자친구를 떠올려보면 마이너한 취향쪽으로 소비를 잘했다. 취향이 다른 내가 봤을 때는 좀 비싸지 않나 싶은 물건을 쉽게쉽게 잘 구매했다. 오히려 지금 마이너의 시장이 블루오션일지도?
소수의 파이가 점점 더 늘어나길 바라며. 지금까지 장발남의 넋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