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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

비엔티안 1박2일 배낭여행기: 메콩강변의 느린 시간 속으로 [라오스1]

공항에서 걸어나온 동남아의 첫 인사

비엔티안 와타이공항

"아, 이거야." 와타이 국제공항을 나서자마자 뺨을 감싸는 습한 공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5월의 비엔티안은 우기 직전의 무거운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어두운 밤거리를 50여 분 걸어가며 숙소를 찾아가는 동안, 발에 땀이 차고 배낭이 등에 달라붙었지만 이상하게 반가웠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남아의 그 특별한 습함이었으니까.

노점에서 즐기는 퍼(국수)와 비어라오

거리엔 아직 활기가 남아있었다. 오토바이가 느릿느릿 지나가고, 길가 노점에선 누들 수프를 끓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게 바로 비엔티안이구나. 바쁘지 않은, 조급하지 않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라오스의 수도 말이다.

메콩강이 품은 조용한 수도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지만, 우리가 아는 여느 수도와는 사뭇 다르다. 메콩강을 끼고 자리 잡은 이 도시는 인구 80만 명 남짓의 아담한 규모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축물과 불교 사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왓 호싼띠니밋 입구

14세기부터 란상 왕국의 중심지였던 비엔티안은 '달의 도시(City of Moon)'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해가 지고 나면 도시 전체가 은은한 달빛 아래 고요해지는 모습이 그 이름에 딱 어울린다.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태국 바트화도 통용되고, 곳곳에서 태국어와 라오어가 뒤섞여 들린다.

5월, 우기 직전의 완벽한 타이밍

구름낀 남푸분수 광장

5월은 비엔티안 여행의 숨겨진 베스트 시즌이다. 본격적인 우기(6-10월)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아직 비는 많이 오지 않지만, 건기의 뜨거운 햇살은 이미 한풀 꺾인 상태. 낮 기온은 30도 안팎으로 걸어 다니기에 무리가 없고, 습도가 높아 땀은 나지만 그만큼 현지의 생생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배낭여행자라면 준비물은 심플하게. 반팔과 긴팔 셔츠, 편한 걸을 신발, 그리고 반드시 모기 스프레이. 해충 방지제는 현지에서 사는 것보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가는 것을 추천한다.

웰컴투 비엔티안

비엔티안까지는 한국에서 직항으로 편하게 올 수 있다. 직항편으로 5시간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와타이 국제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약 4km 거리. 택시를 타면 8-10달러 정도지만, 체력이 된다면 걸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도시 전체 규모가 작아 웬만한 관광지는 도보로 충분히 다닐 수 있다.

작지만 알찬 볼거리들

빠뚜사이 정면

"어? 이거 파리에서 본 것 같은데?" 빠뚜사이(Patuxai) 앞에 서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 프랑스 개선문을 모델로 1968년 건립된 이 기념문은 독립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라오스 전통 문양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빠뚜사이 아름다운 아치
도로에 끝에 빠뚜사이

7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맨 위층에서 내려다보는 비엔티안 시내 전경이 압권이다. 도시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여행 첫날에 가면 전체적인 지리감을 익히기에 좋다. 입장료는 30,000킵(약 1,500원).

탓담: 라오스 불교의 성지

비엔티안의 랜드마크 탓담

라오스 불교의 최고 성지인 탓담(That Dam)은 검은 불탑이라는 뜻이다. 16세기에 건립된 이 불탑은 높이 45미터로 비엔티안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특히 해질 무렵에 가면 황금빛으로 물드는 탑의 모습이 장관이다.

역광의 탓담

불탑 주변으로는 현지인들이 조깅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관광지이면서 동시에 현지인들의 생활 공간이기도 한 곳이다.

Micasa Cafe: 현지인이 사랑하는 숨은 명소

Micasa Cafe 전경

관광 가이드북에는 잘 나오지 않는 곳이지만, 현지 젊은층 사이에서는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괜찮은 커피,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이 매력적이다. 라오스산 커피의 진가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더위에 지쳤을 때 시원한 아아 한잔

특히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라떼를 추천한다. 라오스 고산지대에서 자란 원두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일품인 커피를 1,500원도 안되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메콩강: 도시의 영혼

메콩강변 야외 와인바

비엔티안 여행에서 메콩강을 빼놓을 수 없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서는 해질 무렵 강 너머로 지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현지인들도 이 시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강변으로 나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노을지는 메콩강
메콩강변 광장에서는 매일밤 놀이동산이 생겨요

강변에는 간이 의자를 놓고 영업하는 맥주 장수들이 있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비어라오(Beer Lao) 한 병의 여운은 평생 잊기 어렵다.

모닝마켓의 삥무 바베큐

모닝마켓 삥무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모닝마켓(Talat Sao) 주변이 다시 활기를 띤다. 낮에는 각종 생필품과 기념품을 파는 시장이었지만, 저녁이 되면 포장마차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삥무(라오스식 바베큐) 포장마차는 놓칠 수 없는 별미다. "삥무 하나요!" 라오어로 "핑무 눙 코이!"라고 주문하면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고기 덩어리들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삼겹살과 비슷해 보이지만 양념과 굽는 방식이 다르다.

비엔티안 모닝마켓 삼겹살구이(삥무)

큼지막한 덩어리를 신중하게 고르면 숯불에 천천히 구워준다. 몇 분 후 한입 크기로 잘라서 특제 소스와 함께 내어주는데, 이 소스가 진짜 예술이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고, 고수와 민트가 들어가 상큼함까지 더해진다.

맛있다 삥무

"맥주도 주세요!" "비어라오!"라고 말하면 커다란 아이스박스에서 냉기를 가득 머금은 비어라오를 꺼내준다. 삥무를 특제소스에 찍어 입안에 넣고 씹다가, 맛이 채 사라지기 전에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그 순간. 이게 바로 비엔티안의 맛이다.

밤이 깊을 수록 짙어져가는 삥무의 연기

한 접시에 30,000-40,000킵(1,500-2,000원), 비어라오 한 병에 15,000킵(750원) 정도면 충분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봉고차 옆 환전소에서 만난 따뜻함

유명 환전소는 문을 닫았다

다음날, 현금이 필요해 환전소를 찾았다. 작년에 성황하던 환전소는 문을 닫았고, 대신 봉고차 옆에 간이 의자를 놓고 영업하는 간이 환전소가 열려 있었다.

수상한 차들과 천막

길을 건너려는데 건너편에서 한 아주머니가 "마라이, 마라이!(이리 와, 이리 와!)"하며 손짓한다. 솔직히 분위기가 좀 수상해서 긴장했다. 하지만 막상 환전을 해보니 고시환율보다 꽤 이득이었다.

200달러를 괜챃은 환율로 환전했다!

환전을 마치자 아주머니가 활짝 웃으며 시원한 생수를 건넸다. "사바이디!(안녕하세요!)" 어눌한 라오어 인사에 아주머니는 더욱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긴장감이 모두 사라졌다.

환전하고 받은 시원한 물

"콥짜이 라이라이!(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하니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충분히 통했다. 비엔티안 사람들의 따뜻함을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Tully's Irish Pub에서의 의외의 만남

나의 최애 Tully's

마지막 밤,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Tully's Irish Pub을 찾았다. 아이리시 펍이라는 이름과 달리 현지인과 서구인, 그리고 몇몇 아시아 여행자들이 어우러진 국제적인 분위기였다.

나의 최애 타워비어

바에서 만난 라오스 대학생 시투(Situ)는 영어를 꽤 잘했다. "라오스 어때요?"라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Tully's 뒤편에 하천

"라오스는 'bo pen nyang(보 펜 냥)' 문화예요. 괜찮다, 문제없다는 뜻이죠.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요. 천천히, 여유롭게 살아가는 게 우리 방식이에요."

2.5L 타워비어가 얼음까지해서 8,500원

그 말을 들으니 지난 이틀간 느꼈던 비엔티안의 여유로움이 이해됐다. 사람들이 느긋하게 걷고, 카페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고, 강변에서 해질 무렵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들이 모두 'bo pen nyang' 문화의 일부였던 것이다.

알뜰한 배낭여행을 위한 실용 팁

예산 계획

라오스는 태국에 비해 돈이 많이 지저분하다

- 1일 평균 예산: 30-40달러 (숙소, 식사, 교통비 포함)
-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8-12달러/박
- 현지 식당 한 끼: 2-5달러
- 관광지 입장료: 1-3달러

숙소 선택


T T Hostel 로비

세타팰레스 호텔(Settha Palace Hotel) 근처나 남푸 광장(Nam Phu Fountain) 주변을 추천한다. 도보로 주요 관광지에 갈 수 있고, 밤늦게도 비교적 안전하다.
저렴하게 1인 숙박을 원하면 T T Hostel 도미토리를 이용하면 1인 1만원이하로 숙박을 해결할 수 있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행객과 1층로비에서의 토크토크는 덤이다.

교통 팁

급할 땐 역시 택시

- 시내 이동: 뚝뚝(tuk-tuk) 기본료 20,000킵
- 자전거 대여: 하루 20,000-30,000킵
- 스쿠터 대여: 하루 100,000-150,000킵
- 도보가 가장 경제적이고 도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

환전과 팁

라오스 영화관람료, 물가에 비해 비싼 듯?

- 달러 현금을 가져가서 현지에서 킵(Kip)으로 환전
- 길거리 환전소가 은행보다 환율이 좋은 경우가 많음
- 카드 사용은 제한적이니 현금 위주로 준비

안전 수칙

남자 혼자 밤에 잘 다녔지만, 주의해서 나쁠 껀 없다

비엔티안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기본적인 주의사항은 지켜야 한다.
- 밤늦은 시간 혼자 다니기 피하기
- 여권 사본 항상 휴대
- 음식은 현지인이 많이 가는 곳에서
- 물은 생수만 마시기

'Bo Pen Nyang'의 지혜

라오스 비엔티안 메콩강변

비엔티안에서의 짧은 1박 2일은 내게 'bo pen nyang'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50분을 걸으며 땀을 흘렸지만 괜찮았고, 간이 환전소에서 긴장했지만 결국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 계획했던 곳들을 다 가지 못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시장에서 올려다 본 비엔티안의 밤하늘

메콩강변에서 바라본 석양, 삥무의 고소한 맛,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여유로운 미소. 비엔티안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잠시 멈춰 서는 법을 가르쳐주는 도시였다.

다음에 라오스를 다시 방문한다면 더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 그때까지 마음 한구석에 'bo pen nyang'의 여유로움을 간직해두려 한다.

"코프자이 라이라이, 비엔티안!" (정말 고마워요, 비엔티안!)

*여행 일자: 5월 중순
*여행 스타일: 배낭여행  
*예산: 1박 2일 총 80달러*

P.S.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야시장에서 먹는 마라꼬치, 매운샐러드가 맥주 안주로 일품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비엔티안에 가고 싶어졌다면,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세우지 마세요. 비엔티안의 진짜 매력은 계획에 없던 순간들에서 나오거든요.
그리고 꼭 기억하세요. “Bo pen nyang” - 괜찮다, 문제없다. 이 한 마디면 비엔티안에서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와든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언젠가 메콩강변에서 만난다면, 삥무와 비어라오로 건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