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호수와 바람이 전하는 이야기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몇 번 불렀는데 대답이 없네?"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양강댐에서 청평사로 향하는 배 위에서 나는 어느새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춘천의 푸른 청평호수가 배 아래로 술렁이고, 봄바람이 머리칼을 흔들어댔다. 도시의 소음에 익숙했던 귀가 물소리와 바람 소리만으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도시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그렇게 나의 4월초 , 춘천 당일치기가 시작되었다.
서울과 가까운 자연의 도시, 춘천

강원도의 관문이자 수도인 춘천은 서울에서 경춘선을 타고 약 1시간 20분 거리에 있다. '호반의 도시'라 불리는 이곳은 소양강댐과 의암호, 춘천호 등 크고 작은 호수들로 둘러싸여 있어 어디서든 맑은 물과 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미식 도시이자, 애니메이션 박물관, 김유정 문학촌 등 문화적 콘텐츠도 풍부한 곳이다. 봄이면 벚꽃과 철쭉이 도시를 수놓고, 여름이면 호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어 사계절 내내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당일치기 여행지로 제격이다. 오늘은 그런 춘천의 숨은 매력을 친구와 함께 찾아 나섰다.
춘천행 당일치기, 이렇게 준비했어요
춘천 방문 베스트 시즌: 4월
4월초, 서울의 벚꽃이 지려고할 무렵 난 시점에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은 서울보다 기온이 조금 낮아 벚꽃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고, 오봉산길 벚꽃길과 호수 주변의 봄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물론 가을 단풍도 일품이겠지만, 봄의 청량함을 느끼기에 4월초는 최적의 시기였다.
이동 수단: 경춘선 타고 편안하게
아침 10시20분, 금곡역에서 친구와 만나 경춘선 열차를 탔다. 주말 아침이라 사람들이 많아, 앉지 못해 내릴 것 같은 무리앞에 서 있기로 했다. 내가 곧 내릴 것 같은 사람을 잘 맞추는 편인데, 대성리에서 내릴 것 같은 젊은이들 무리앞에 섰다. 아니나 다를까 대성리역에서 젊은이들이 내려서 남은 시간 앉아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북한강과 가평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은 시작되었다.
경춘선 타면 창밖 풍경이 영화 한 편이래요. 진짜 그 말이 맞네요.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점심 뭐 먹을지, 친구의 친구는 언제 합류하는지에 같은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춘천역이었다.
춘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닭갈비 성지
명동닭갈비골목: 혜정닭갈비의 맛있는 유혹

11시 조금 안되어 춘천역에 도착했다. 춘천역 몇 번와봤다고 역사 사진찍는 것도 생략하고 부랴부랴 이른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메뉴는 역시 닭갈비. 춘천의 핵심 미식 테마파크라 할 수 있는 명동닭갈비골목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이지만 수십 개의 닭갈비 전문점이 즐비한 거리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솔솔 풍겨오는 매콤한 닭갈비 양념 냄새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수많은 가게 중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곳은 '혜정닭갈비'. 예전에 방문했을 때 맛에 반해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찾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벌써부터 테이블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 냄새와 소리가 반겼다. 앉자마자 주문했다.
"닭갈비 2인분 먼저 주세요!"
곧 우리 앞에 커다란 무쇠 팬과 함께 양념에 버무려진 닭고기와 각종 채소들이 등장했다. 사장님이 직접 팬을 들고 와서 센 불에 요리를 시작하셨다.
사장님의 노련한 손놀림에 닭갈비는 금세 익어갔다. 적당히 익었을 때 한 점 집어 먹으니... 아, 이 맛!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양념이 입안 가득 퍼지고, 부드러운 닭고기가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서비스로 주신 우동사리 우동도 색다르게 맛있었다.
2인분으로도 꽤 배가 불러왔지만 볶음밥을 포기할 순 없었다. 볶음밥을 위해 양념을 아껴서 두었으니 역시나 먹어야겠다. 서비스로 주신 사이다로 목을 적시고 주문을 했다.
“사장님 볶음밥 하나 주세요”
팬에 밥이 들어가고 사장님이 숙련된 솜씨로 볶기 시작하자 또 다른 맛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춘천 와서 이거 안 먹으면 진짜 후회하는겨."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닭갈비와 볶음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 🌟 혜정닭갈비
https://maps.app.goo.gl/inrUxjAMVSUQKvCt7?g_st=ic
> 주소: 강원도 춘천시 명동길 36
> 영업시간: 11:00-22:00 (연중무휴)
> 가격: 닭갈비 2인분 + 볶음밥 = 약 32,000원
> 꿀팁: 볶음밥은 꼭 먹어야하니, 양념을 남겨두기
춘천의 보물, 소양강댐과 청평사
춘천역에서 소양강댐까지: 버스 아니, 택시 이용
식사를 하고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데, 버스 시간이 애매했다. 소양강댐에서 청평사로 가는 배편이 1시간마다 있어 2시 배를 타지못하면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할 수도 있다. 특히 닭갈비골목에서 소양강댐까지 가는 버스는 1대밖에 없는데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타고가면 무조건 늦게 도착한다. 빨리오는 버스를 타고 버스가 많은 춘천역으로 갔다. 도착해서 버스를 타려고했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안될 것 같았다.
택시를 타기로 했다. 카카오택시를 부르니 얼마안되어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를 타니 기사님이 춘천 토박이셔서 소양강댐 방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님도 이렇게 댐을 열어 호수물을 방류하는 건 어렸을 적에 보고 오랜만이라고 하셨다.
청평사: 배 타고 만나는 고즈넉한 사찰

배는 소양강댐 선착장에서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배가 출발하자 시원한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양옆으로 보이는 산과 그 아래 깊게 패인 협곡, 그리고 에메랄드빛 청평호수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이런 곳이 있었어?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에?"
친구가 감탄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타고 가는 내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청평사 선착장에 도착해서 조금 걸었다. 친구의 친구가 손을 흔들며 반겨줬다.
"야, 배 타는 거 어땠어? 날씨 좋아서 경치 장난 아니지?"
친구의 친구는 '마이 좋드라'(아주 좋더라)와 같은 강원도 사투리를 종종 사용했다. 그의 안내로 오봉산에 위치한 청평사로 향했다.

청평사는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사찰이었다. 약 10분 정도 오르막길을 걸어 도착한 청평사는 오래된 소나무와 잘 가꿔진 정원이 방문객을 반겨주었다. 평일이라 관광객도 많지 않아 조용히 사찰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평사의 약수터. 친구의 친구가 바가지에 물을 뜨며 말했다.
"이 물 한번 마셔봐. 춘천에서 제일 맛있는 약수물이야."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나는 약수물을 마시니 등산의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사찰 구경을 마치고 친구의 친구가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내가 아는 숨은 명소 하나 더 보여줄게."
현지인만 아는 춘천의 숨은 명소
산토리니 카페: 춘천의 그리스를 만나다
친구의 친구 차를 타고 약 15분, 의암호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산토리니' 카페에 도착했다. 하얀 건물과 파란 지붕,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호수 전망은 마치 그리스의 산토리니 비슷하게 꾸며놓았다. 찐 산토리니에 다녀온 나에겐 짭토리니같았지만 카페가 넓직하고 트여있어서 답답함이 없어 좋았다.

"여긴 관광객들은 잘 못오고, 주로 춘천 사람들만 와. 뷰가 끝내주지?"
실내에 들어서자 통유리창 너머로 춘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자 따스한 봄볕과 살랑이는 바람이 기분을 한층 더 좋게 만들었다.

"에이, 여긴 뷰만 좋은 거 아니야. 커피도 맛있어. 내가 아메리카노 한 잔 살게."
친구의 친구 말대로 커피 맛도 훌륭했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로움이란...
> 🌟 산토리니 카페
https://maps.app.goo.gl/zebKjPAwYRS7QjG49?g_st=ic
> 주소: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박사로 88
> 영업시간: 매일 10:00-22:00 (월요일 휴무)
> 뷰 포인트: 2층 테라스석 추천
춘천에서 먹는 제주흑돼지의 맛

친구의 친구의 와이프까지 우리 넷은 현지인부부의 맛집이라는 퇴계동 제주돈내코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가게에 들어서자 왠지모르게 제주도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4인분을 주문했고,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를 추가해 먹었는데 그 조합이 정말 일품이었다. 두툼한 고기와 얼큰한 찌개 맛에 우리 모두 만족했다.
> 🌟 제주돈내코
https://maps.app.goo.gl/GrKy6YQnH3nsKTE29?g_st=ic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퇴계로77번길 19-40 1층 (퇴계동)
> 영업시간: 매일17:30 ~ 22:30 (일요일 휴무)
> 꿀팁: 김치찌개 라면사리 추가해서 먹으면 소주가 술술 들어감
당일치기 춘천 여행을 위한 실용 정보
예산 💰
- 교통비: 서울-춘천 (경춘선) 왕복 1인 약 6,000원
- 식비: 닭갈비 2인 32,000원, 카페 음료 1인 약7,000원, 제주산생고기 1인분(200g) 17,000원
- 기타 교통비(시내버스, 택시 등): 약 15,000원
- 청평사 배편: 왕복 1인 20,000원
- 총 예산: 약 80,000원/1인
교통 🚆
- 기차: 상봉역,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일반열차 또는 2층으로 구성된 ITX-청춘 이용 (약 1시간 20분 소요)
- 시내버스: 춘천역에서 소양강댐까지 11, 11-1, 12번 버스 이용 (30-40분 소요)
- 택시: 춘천역에서 명동닭갈비골목까지 약 10분 (기본요금) / 도보로는 20-30분소요
주의할 점 ⚠️
1. 배 운행 시간 확인: 소양강댐-청평사 가는 배는 계절과 요일에 따라 운행 횟수가 다름. 반드시 사전에 확인 필요 (4-10월 운행, 동절기 운휴 가능성)
2. 춘천 날씨: 서울보다 기온이 약간 낮은 편이니 봄철에는 얇은 겉옷 필수
3. 닭갈비 골목 피크타임: 주말 저녁(6-8시)은 대기 시간이 길 수 있으니 일찍 방문하거나 예약 권장
4. 경춘선 막차 시간: 평일 기준 춘천→서울 마지막 열차는 22:24 출발 (변동 가능성 있으니 확인 필수)
꿀팁 🍯
1. 경춘선 좌석 예약: 주말에는 미리 예매하는 것이 좋음 (당일 표는 매진되는 경우가 많음)
2. 청평사 배편 + 버스 패키지: 소양강댐에서 청평사 왕복 패키지가 있음 (배+버스 조합)
3. 춘천 모바일 투어: 춘천시 공식 앱 '두루누비'를 다운받으면 주요 관광지 정보와 할인쿠폰 제공
4. 봄내길 지도: 공지천 안내소에서 무료 지도를 받아 산책하면 더 편리함
마음까지 맑아지는 춘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춘천역으로 향했다. 단 하루였지만, 탁 트인 호수와 산, 맛있는 음식, 그리고 따뜻한 현지인들과의 만남까지... 마치 며칠을 여행한 것 같은 충만함이 느껴졌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도시의 삶에 지칠 때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안을 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춘천은 단순히 닭갈비로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맑은 물과 산이 어우러진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었다. 다음에는 하루가 아닌 1박 2일로, 조금 더 천천히 ‘춘천’ 한자의 뜻을 따라 '봄내'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
춘천을 찾으실 분들께 작은 조언을 드리자면, 유명한 관광지만 쫓아다니기보다는 현지인들처럼 호숫가를 천천히 걷고, 카페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고, 맛있는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것이 춘천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진짜 선물일 테니까요.
자, 다음 주말엔 어디로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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